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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서워진 29살 남자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사람한테 당한 기억이 많아서 대인관계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사람한테 당한 기억이 많아서 대인관계가 힘드네요.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저도 남에게 준 상처가 많아서 마냥 피해자라고 징징댈 인간은 못됩니다.하지만 현재 제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그냥 제 인생 이야기 몇 자 적어보려고 글을 썼습니다.적다보니 엄청난 장문이 되었는데 제 인생에서 큰일이었던 부분을 요약한 거라 줄이는데 한계가 있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7살 때 부모님 이혼 이후 12살까지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렸습니다. 친구를 못 사귄 건 아니었지만 반에 한 명씩 있는 불쌍한 애, 이상한 애가 바로 저였죠.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내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조금씩 반 친구들의 행동을 모방하며 고쳐나갔습니다.그 과정에 제가 선을 넘고 실수한 적도 많았지만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습니다.그리고 중학교 졸업할 무렵 기적적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화해하시고 자주 왕래하게 되었습니다.일반 가정 보다는 덜 화목했지만 그 때 저는 가족끼리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정말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모자란 저를 감싸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놀아준 친구들과 자식을 위해 다시 가족이라는 조직을 꾸려준 부모님께는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하지만 제 성격이 조금 뒤틀려있다는 걸 그 때의 저는 몰랐습니다.친구와 가족이 있는 건 당연한 것이며 내가 당한 게 많으니 나도 그렇게 남들에게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공부와 자기계발도 게을리 했고 어찌저찌 졸업하여 대학교에 갔지만 지방대였습니다.하지만 대학교 입학 후에는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계속 배워나갔고 새로운 사람도 계속 사귀어가며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게으르고 미련해서 남들보다 뒤쳐지긴 했지만 미련한 노력이라도 계속해 나갔습니다.그렇게 열심히 학교생활 하던 도중 학교 대강당에서 처음 보는 사람 둘이 저에게 설문조사 가능하냐며 다가왔습니다.저는 그 당시 사람 사귀는 것 자체에 재미가 들려있던 상태라서 의심 없이 따라갔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하지만 정말 운 없게도 그 사람들은 위장 포교 중이었던 신천지인들이었습니다.게으르고 미련하고 멍청하기까지 했던 저는 그대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과 인연을 늘려가며 사이비에 빠져들었습니다.사람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걸까요? 저는 친구를 의심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을 따라갔고 신천지인들이 흔히 써먹는 포교 방식인 다단계 포교에 빠져들었습니다.처음엔 친구끼리 만나다가 아는 선배를 소개 시켜주고 그 선배가 자신의 멘토 선생을 소개 시켜주고 그 멘토가 성경 이야기를 꺼내면서 점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멘토 선생이란 사람은 유사 연애 감정이 들게 만들었고 심리상담을 하는 척 하면서 심리적으로 점점 파고들더군요.그리고 성경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 이야기는 정말 귀한 이야기이고 원래라면 너에게 말하지 않을 이야기였는데 너는 선택받은 사람인 것 같다"라며 저를 구슬렸습니다. 멍청하고 미련했던 저는 이게 사랑 고백 비스무리 한 것인 줄 알고 그 멘토를 따라 복음방이라는 것에 들어갔습니다.그 이후부터는 그냥 신천지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었고 1년간 신천지 생활을 했습니다.신천지 생활은 정말 혹독했습니다.헌신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당하면서도 이건 기쁜 일이라며 세뇌당한 채로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멍청한 일이라는 걸 알지도 못했습니다.그렇게 1년이 지나니 고등학교 친구는 물론이고 학과 친구들에게도 민폐를 끼치게 되어 손절당하고 고립되었습니다.그렇게 고립된 이후 군대를 갈 시기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신천지에서 멀어졌었는데, 그 때 일반인(군동기)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다 보니 점점 내가 몸담고 있었던 집단이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렇게 그들과의 연락 자체를 줄여나갔고, 그들이 군부대까지 알아내서 찾아왔지만 제가 만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시간이 지나 전역을 했습니다.다행히 학과에서 친했던 몇몇 녀석들은 아직도 친구로 남아 있었고, 군대에서 만난 인연도 몇 있어서 외롭지 않은 군생활을 보냈습니다.하지만 과거가 저에게 남긴 상처와 제가 저지른 민폐 짓거리는 소문으로 남아서 계속 저에게 영향을 끼치더라고요.부모님은 제가 학교에 가서도 신천지인들에게 시달릴까봐 성형을 시켜주셨습니다.그런데 딱 제가 복학하게 될 시점에 코로나가 터지더라고요.그렇게 저는 2년간 자택 수업을 들었고 그 사이 꿈이 생겨서 계속 자기개발에 매진했습니다.덕분에 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생겼고 제가 자신을 가질만한 전공분야가 생겼어요. 저는 이 시간을 정말 값지게 생각합니다.그렇게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그 때 갑자기 부모님께서 당장 캐나다 워홀 갈 준비하라고 닦달을 하시더라고요.친척들과 이미 이야기 끝났다며 너가 지금 가면 완전 로또 맞는 거라며 호들갑을 떠셨습니다.10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갔던 친한 친척이 있었는데, 저희 가족이 여러 번 도와준 적이 있어서 이번에 저를 친척네 집에 신세지게 하려고 하셨던 거였습니다.하지만 저는 너무 갑작스럽게 이 중요한 시기에 워홀을 가라 하시길래 바로 싫다고 말했고 그 이후 부모님과 대판 싸웠습니다.캐나다 워홀에서 가장 중요한 게 영어인데 저는 그 때 School 스펠링도 검색해가며 찾는 멍청이였어서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 줄 아냐며 절대 안간다고 했습니다.그런데 부모님께서 "내 소원이다.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나를 봐서라도 가줘라. 너의 인생이 변할 것이다" 라며 저를 자꾸 내보내려고 했습니다.그래도 제가 안 간다고 하자 그 캐나다 친척이 "내가 NFT 관련해서 사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너가 만들었던 작품을 여기에 올려서 팔 수 있을 것 같다" 라며 저를 설득 했습니다.저는 워홀 자체는 반대했지만 제 작품을 돈 받고 팔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캐나다로 가겠다고 했습니다.친척은 자기 집에서 월세 내고 살면서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일하고 월급 받고, 퇴근 후 집에서는 컴퓨터로 작품 활동하면서 영어도 배워가라고 말했습니다.정말 멍청하게도 그 말을 믿고 비행기를 탔습니다.그렇게 도착했더니 왠걸? 친척들은 마약쟁이들이 널려있는 치안 안 좋은 깡시골 동네에서 마약 냄새 나는 아파트에서 살고 계셨습니다.하지만 저는 그 당시 마약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가 그냥 신기한 냄새가 나는 담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큰 돈 들여서 온 워홀이니 잠 자는 곳이나 일하는 곳이 좀 안 좋아도 제 작품 활동 하면서 영어도 배워서 돌아가자고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그렇게 들어가서 컴퓨터부터 확인해봤는데 컴퓨터가 완전 고물이더라고요. 알고보니 친척은 본인이 새로운 지점으로 가게 되어서 지금 지점을 맡길 사람이 없어서 저를 부른 것이었고 가게에서 주워온 고물 컴퓨터만 갖다 놓고 NFT 사업 이야기로 저를 구슬려서 일단 오게 만든 것이었습니다.친척에게 컴퓨터가 안된다고 하니 그럼 여기서 일해서 돈 벌어서 노트북 사서 작업하면 될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저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기왕 큰 돈 들여서 왔는데 영어라도 배우고 가자는 생각에 그냥 지냈습니다.그런데 캐나다 시골 생활이 생각보다 정말 힘들더라고요. 가게에선 마약에 찌든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고, 온갖 진상들이 영어로 저에게 컴플레인 걸고 가게에서 싸우고 가게 뒤편에선 마약쟁이들이 똥 싸놓고 마약에 찌들어서 기절해 있고 쓰다 버린 주사기는 곳곳에 널려있고, 인디언 갱끼리 싸움 나서 칼 맞고 가게 앞에 도망쳐 온 놈 때문에 처음으로 캐나다 경찰도 보고 정~~~~~말 빡센 일투성이었습니다.저는 거기서 마약 때문에 사람이 죽는 걸 여러번 봤습니다. 인생에서 처음 본 죽음이었는데 보다보니 담담해지더라고요.저는 시도때도 없이 싸움이 벌어지는 곳에서 까딱 잘못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시작했고 쉐도우 복싱도 하면서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단련했습니다.그런데 환경이 환경인지라 영어로 나에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점점 편집증 비슷한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향수병 때문인지 우울증도 생겼구요. 게다가 누가 나를 따라와 칼로 찌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계속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누가 영어로 말하면 다 제 욕하는 걸로 들렸습니다. 하물며 항상 싸움이 벌어지고 험악한 분위기로 하는 말을 들으니 그렇게 들릴 수 밖에 없었죠.그렇게 1년을 버텼습니다. 이 때도 정말 미련했어요. 못 하겠으면 그냥 돌아갔으면 될 일이었는데, 가족들에게 힘들다고 했더니 힘들어도 거기서 사는 게 더 낫다며 한국보다 거기가 훨씬 살기 좋으니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그래서 1년을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그렇게 돌아와서 가족들을 봤는데 다들 제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굳더군요. 제가 산전수전 다 겪고 편집증에 우울증까지 걸려서 돌아왔으니 그럴 수밖에요. 가족들은 제가 거기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물어봤고 제가 겪은 일들은 말하기 시작하니 말이 적어지더라고요. 아버지는 그래도 인생에 큰 경험 한 번 했다면서 저를 위로 하였고 어머니는 들인 돈이 있는데 영어는 좀 배우고 오지 그랬냐며 조금 타박 하셨습니다.그런데 제 안에서 뭔가 이상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울화가 치밀더라고요.내가 누구 때문에 이 개고생을 하고 왔는데 그런 나한테 한다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지 엄청나게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표출은 하지 않았어요. 가족들이 고생해서 보내주신 고마운 경험에 대해 그런식으로 표출해버리면 겨우 만들어진 이 분위기가 망가질 것 같았거든요.그렇게 한국 생활을 시작했고 저는 손 놓고 있었던 작품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가 바로 취직 준비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때부터 울화가 터져서 이제 더이상 남에게 휘둘리며 살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제 내 갈길 가겠다고 했습니다.어머니와 저는 대판 싸웠고 감정이 격해져서 저는 누구 때문에 그 개고생을 한지 아냐며 거기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어머니께 토해냈습니다.어머니는 그렇게 힘들었으면 집에 오지 그랬냐며 말씀하셨지만 저는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며 머저리처럼 말했어요. 그 이후 저는 어머니와 조금 소원해진 상태로 2년간 제가 원하는 분야로 취업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편집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해져서 취업을 포기하고 방안에 틀어박혀서 제가 가진 기술을 이용해 집에서라도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여기까지가 제 인생이야기입니다.이기적이고 미련하게 살아온 이야기이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두서 없고 형편없게 쓴 글이라 읽기 힘든 부분이 많았을텐데 잘 읽어주셨군요.저는 저 자신이 온갖 호사를 누렸음에도 본인 능력 부족으로 인해 망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기회가 있었고, 선택을 했음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하지만 더는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다시 세상에 뛰어들었다간 불타 죽을 것 같아서요.그래서 방안에 틀어박혀서 어떻게든 내 기술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만들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또 다른 미련한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걍 대충대충 살아요 뭐가 되려고 하거나 억지로 안되는 것 까지 붙잡고 살 필요 없어요.